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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 유형남성
<b> 어머니를 닮아 노래 잘하는 산골 소년


</b>강원도 산골소년 박상철은 어머님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장 행복했다.

아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어머님은 단지 노래하나는

예술이라는 평은 받았지만 아들이 이처럼 노래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박상철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노래 배우는 것이 가장

행복했었다고 한다.

그후 시간은 흘러...

집이고 밖이고 하도 노래를 부르고 알지도 못하는 발성연습을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또 지르고 하다보니 이웃집에서다 쫓자

내야한다고 성화였다.

<b>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은 오직하나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막노동을 번 돈으로 주말마다 연기학원을 다였다.


</b>고등학교 때는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

으로 밴드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배우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즐거웠

으며 어떻게 보면 학교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밴드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큰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도 배우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에 태어나 연기 학원에 다닐 돈이 없었다.

박상철은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방학동안 막노동을 해서 돈을 모아

주말에는 서울로 올라와 연기 학원을 다였다.

<b> 이 모든 것은 박상철 가족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졸업을 하자마자 서울로 가수의 꿈을 안고 상경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임승차로 서울로 상경했다.

</b>TV가이드를 들고 무작정 작곡가 사무실로 찾아 갔아 가는데....

노래 정말 잘 한다고 당장 데뷔해도 되겠다고 말해 가슴은 부풀고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그러나 돈이 문제였다....

산꼭대기에 가장 값싼 집에 살면서 반지 공장을 다니는데 가수

데뷔하기는 턱없이 모자란 월급이었다.

음반 취입하는데 1천만원 정도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

혼자 너무 너무 울었다.

1천만은 한번도 보지 못했고 그 많은 돈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에 박상철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큰 고민에 빠졌다.

그래 반지 공장에서 일해서는 돈을 모을 수가 없어 기술이 없는

박상철에게는 막노동이 가장 돈을 빨리 모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주말도 쉬지 않고 막노동을 시작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그 놈의 꿈이 뭐길에 힘든지도 모르고 일하고

틈만 나면 작곡가 사무실을 찾아가서노래연습을 하였다


<b>1천만원 모으다...1천만원 날리고 거리에서 노숙자 신세


1천만원을 모은 순간 박상철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b>얼마나 힘들게 모았던가 감히 상상을 못하는 그 역경을

이겨내면서 가수의 꿈을 이루었다는 듯이 기쁨의 눈물이었다.

오로지 그 놈의 꿈을 향해 모은 돈 1천만원을 그대로 드렸는데

음반취입하자는 애기는 안했다.

처음에는 레코드사에 데려가는 둥 하더니 나중에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더 연습하라고 했다.

박상철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데뷔하려면 본격적으로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에 막노동일도 그만두고 연습에만

전념했는데 ....

그 와중에 방세가 밀리면서 쫒겨나 거리의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빌딩 계단에서 자고 지하철에서도 자는 고생을 했다...

그때가 겨울이었다.

빌딩계단에 둔 앨범과 옷가지들을 청소부가 어느날 치워버려

자신의 모든 추억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도 작곡가 사무실로 찾아가 언제 취입을

해요 하고 물으면 자꾸 다른 핑계를 대곤 했다.

결국 그 동안 피땀 흘려 번 돈 1천만은 그대로 날리고 만 것이다.


<b>미용사가 되서 돈벌어 가수가 되자.


</b>돈을 날리고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서 고향으로 내려가

막노동 생활을 다시 하면서도 가수의 꿈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또 서울에 가서 죽자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또 다시 상경하여 무작정

미용실에 들어가서 허드렛일부터 시작하게 되고 10년정도 벌면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b> 군대생활


</b>미용실에서 일하다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그 경력으로 이발병

아닌 이발병이 되었다.

군인과 그 가족들을 상대로 미용연습을 실컷 해봤다.

또 마네킹도 사다 놓고 연습을 하였다.


<b>노래 부르는 미용사


</b>제대 후 술병 나르고 막노동 일을 몆달해서 미용학원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거의 여자들이었지만 신경 안쓰고 박상철은 가수가 꿈을 위해

미용사를 하는 거라고 입에 달고 다녔다.

노래도 잘부르고 해서 여자 학원생 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미용학원에서는 이미 가수 아닌 가수가 되 버렸다.

그러다 시험에 합격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미용실을 차리는데

돈이 없어 가장 싸고 허름한 미용실을 인수했다.

미용실을 차렸지만 손님이 별로 없어 생활에 곤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가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손님 한분 한분에게 노래를 부르면서

서비스를 실천한 결과 미용실은 입 소문을 통해 날로 번창했다.

아줌마들은 노래한 곡 불러봐 하면서 미래의 가수 박상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미용실에 개인 노래방을 설치해서 가수의 꿈을 향해 연습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노래한번 들어보세요

하면서 노래를 불러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이로서 노래하는 미용사 박상철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b>박현진 작곡가와 만남


</b>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실을 얻기 위해서 박현진 작곡가를 만나기 위해서 찾고

또 찾아 다녔다.

박현진 작곡가와 만남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분은 정말 친절하고 하나 하나 가르쳐 주셨다고 한다.

가수의 꿈을 위해 동해와 서울을 오가며 힘든 나날 이였지만

노래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노래만이 박상철 유일한 인생 이였기에 힘이 났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 연습을 하였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나온 분들이 먼저 데뷔를 하였고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절망감과 조급함이 쌓였지만그때마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더더욱 열심히 하자 오로지 연습뿐 이였다.

말없이 연습만 하는 박상철에게 드디어 앨범을 제작하자면 곡

선정에 들어갔다.

연습에 연습을 다한 결과 앨범이 탄생되었다.


<b>박상철 앨범 발표..꿈에 그리던 가수되다.


</b>박상철 앨범이 출시되고 가수로서 출발은 했지만 아무 것도

모른 박상철에게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생활은 한층 더 힘들었다.

방송국이 어디 있는지 아는 PD 선생님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앨범만 손에 쥐었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가수가 되었는데 그냥 이 되로 있을 수 없어

동대문 남대문 의류 상가를 돌면서 홍보를 하고 택시 승강장에서

테이프를 돌렸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방송국을 찾아갔지만 경비 아저씨마저도 알아주지 않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나중에 앨범이 나오면 방송에 접합한지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물어 물어 심의를 신청했다.

그후 아무도 모르는데 다른 선배 가수들이 인사하는 사람마다 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 분이 어떤 프로를 하고 누구인지도 모르고 안녕 하세요

박상철입니다.

그리고 선배 가수 분들을 졸졸 따라 다니면서 주부가요 교실에도

노래를 불렀는데 젊은 사람이 정말 노래 잘한다는 평을 받아 자주

초대해 주시고 다른 주부가요교실에도 추천해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방송국에 눈을 뜨게 되었고 방송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 온 세상을 다 얻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난 행복하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

그 동안 얼마나 힘들게 가수가 되었던가 절대 후회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b>트로트 박상철 '김자옥 효과'
타이틀곡 공교롭게 '자옥아'

</b>트로트 가수 박상철이 탤런트 김자옥 덕분(?)에 지명도를 높이고 있다.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트로트 세계에서 김자옥의 덕을 본다는 것은 박상철에겐 행운이다.

박상철은 어느 무대에서건 ‘자옥아’를 외친다. 데뷔 타이틀곡이 &lt;자옥아&gt;인 까닭이다.

떠난 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절규하듯 노래하는 전형적인 트로트 스타일. 여기에 박상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어우러져 성인 음악팬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애절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들으면 실소를 터뜨리는 팬들도 있다. 가사 때문이다. ‘내곁을 떠나간 그 사람 이름은 자옥이었어요. 자옥아~ 자옥아~ 내가 내가 못잊을 사람아’로 이뤄진 노랫말이 ‘혹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김자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한다.

“간혹 오해를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특히 지방에 계신 순진한 분들은 ‘김자옥 선배님을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하세요. 그럴때면 당혹스럽죠. 그저 이름이 같은 자옥인데요”

그러나 박상철은 이런 오해가 오히려 즐겁다. 쉽게 트로트 가수 박상철을 기억하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 다소 얼굴이 익숙치 않은 지방 팬들도 &lt;자옥아&gt; 노래가 나오면 ‘아하’하며 손을 맞잡기도 한다. 이 역시 탤런트 김자옥 효과다.

&lt;자옥아&gt;는 노래방, 주부가요교실 등에서 어느샌가 인기곡으로 부상했다. 입가에 쉽게 맴도는 노래말이 자주 불리게 하는 요인이다.

“대중을 즐겁게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박상철. 견고한 트로트 스타의 벽을 뚫고 새로운 스타로 부상할 지 궁금하다.



정교민 기자 gmjung@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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