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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성

  • 유형:     (남성)
  • 출생:    
  •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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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성

 

고음이 매력적인 디스코 리듬의 곡

 

경쾌한 리듬의 곡 ‘내 여자’(정희준 작사/정옥현 작곡/김연호 편곡)를 부르며 데뷔한 박진성은 

젊은 시절 엄격하신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제때 가수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그 바람에 뒤늦게 

늦깎이로 데뷔하게 되었다.?

 

‘내 여자’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부르다가 고음으로 지르는 박진성의 창법이 매력적인 디스코 리듬의 곡. 

첫 취입이지만 수십 년 활동을 펼친 가수처럼 세련되고 능숙하게 노래했다.?

 

4대째 서울 돈암동에서 거주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박진성은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어머니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

 

 

박진성의 노래 실력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곤 했는데 어린 나이에도 굉장히 잘 부르신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미자 선생의 히트곡들을 잘 부르시곤 했다.

 

 

노래를 잘 부르시던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공무원이 되길 원하셨다. 

그러나 아들은 공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학창시절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수원 남문 앞에 있던 아카데미다방에서 DJ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방DJ로 일하며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수의 꿈 뒤늦게 이룬 늦깎이


1987년 서울 돈암동 파이프라인이라는 라이브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카페 사장님이 노래를 잘 부른다며 이영화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만든 작곡가 고 전재학 선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박진성의 노래를 들어본 전재학 선생은 가능성이 있다면서 스타로 키워주겠다고 했다. 

전 선생을 집으로 모시고 가서 어머니와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호랑이 같은 어머니가 

노발대발하시는 바람에 취입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다.

 

 

라이브카페 무대에 계속 오르다가 90년대 초부터 칠순잔치 팔순잔치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라이브카페에선 발라드를 주로 노래했지만 행사장에선 트로트를 불러야 했다.

 

 

행사가수로 활동하다가 90년대 중반 용산 전자상가에서 가게를 내 가전제품을 팔기도 했다. 

2000년에는 MP3를 중국에 보급하겠다고 시장조사를 하느라 중국에서 2년을 거주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수 오세근의 소개로 작곡가 정옥현 선생을 만나 취입이 이뤄졌다. 

박진성이 부르는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 등을 들어본 정 선생은 '한번 해보자'면서 ‘내 여자’의 취입을 진행했다.

 

 

고음역대의 노래를 잘 부르지만 나이가 더 들면 노래가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지 않아 더 늦기 전에 취입을 서둘렀다.

곡명 아티스트 앨범 듣기 뮤비 가사 악보
잊어주마 박진성 박진성 (잊어주마/내여자)
내여자 박진성 박진성 (잊어주마/내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