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1966년 11월 21일 (전라남도 여수)
소속사 - ILM엔터테인먼트
가족 - 2남 4녀 중 여섯째
데뷔 - 1989년 칠갑산
수상 - 1988년 MBC 대학가요제 금상 (고인돌)
주병선 10년만에 음반활동 '아리아리요' 발표
'칠갑산은 축복이자 넘을 수 없는 벽'
가수 주병선(44·사진)에게는 아직도 '칠갑산'의 벽이 높기만 하다.
공전의 히트곡 '칠갑산(1989)'를 부른 게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 대중들은 구성진 전통 가요 창법을 구사하는 그가 2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칠갑산' 그 자체가 주병선이었기 때문이다.
주병선은 '칠갑산'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나 '칠갑산'을 넘어서는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다. '칠갑산'은 그에게 축복이자 벽인 셈이다.
주병선은 지난해 8집 '여덟 번의 행복에 대한 고백'을 발표하고 활동하고 있다. 1999년 6집 '주빌리아' 발표 이후 재작년 초 7집을 발매했지만 발매를 포기했기 때문에 8집은 사실상 그에게 10년만의 새 음반이다.
''칠갑산' 이후 어차피 칠갑산을 넘어설 수 없다면 그 이미지를 버리기보다 다른 느낌을 다가서고 싶었습니다. 타이틀곡 '아리아리요'는 빠른 템포의 국악 가락 노래죠. '칠갑산'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어요.'
록에서 전통가요로
지금은 자신에게 덧입혀진 전통 가수의 이미지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주병선이지만 사실 그는 록 뮤지션이었다. 여수공고 시절 그룹 사운드 활동을 하며 록 뮤지션의 꿈을 키웠고, 추계예대 시절에도 록 음악을 했다.
'록 음악으로 대학가요제에 나갔지만 3~4차에서 번번이 떨어지더라고요. 음악은 꼭 하고 싶은데 상복은 없고…. 그런데 자세히 대학가요제 시상 패턴을 살펴보니, 전통가요를 부른 참가자에게 상을 하나는 주더라고요. 그래서 88년도 대학가요제에 전통가요풍의 자작곡 '고인돌'로 출전하게 됐죠. 결과는 금상이었습니다.'
록 대신 전통가요 가수로 빠르게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집안 전통 때문이었다. 부친인 주운옥씨는 풍물패 상쇠이자 향토문화제였다. 집안에는 박동진 등 국악 명인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칠갑산은 수록곡 중 하나였는데….
이듬해인 1989년 그는 훗날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 음반을 내게 되는 반도음반의 1호 가수로 1집을 냈다. 타이틀곡은 '슬픈 그림자'였고, '칠갑산'은 여러 수록곡 중 하나였다. 수록곡인 '칠갑산'은 신곡도 아니었다. 이미 작곡자인 조운파 선생이 다른 가수에게 한 번 노래를 줬다가 다시 주병선에게 준 것이었다.
그런데 수록곡이던 '칠갑산'이 엉뚱하게 히트를 쳤다. 가수 진주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주부가요열창'에서 재즈 가수 출신이었던 가수 진주의 어머니 유정금 씨가 '칠갑산'으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노래는 주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곧이어 가요계 전반으로 퍼졌다. '칠갑산'은 이후 그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겼다. 1집은 75만장이 팔려나갔다.
반도 음반의 대표 가수가 된 그는 이후 서태지를 발탁하게 된다. 주병선은 록 밴드 '시나위'에서 탈퇴하고 홀로 서기를 하는 서태지의 데모 음반을 듣게 됐고 두 명의 멤버를 보완해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이 나왔다. 음반은 초대박을 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국악기인 태평소를 넣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한 것도 저였죠. 그리고 DJ.DOC의 '뱃노래' 중 전통가요 형식의 코러스를 넣은 것도 접니다. DJ.DOC 멤버 창렬이가 코러스를 해 줘 고맙다며 술을 산다고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안 사고 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