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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아

  • 유형:     (여성)
  • 출생:     1927-05-06
  • 데뷔:    
  • 홈페이지:    
  • 팬사이트:    
본명 : 오금숙(吳金淑) 1927. 5. 6. 제주도 한림 출생 1939. 함북 청진에서 빅타레코드사 주최 가요콩쿠르에 출전 1등 입상 1940. 콜럼비아레코드사 주최 콩쿠르대회에서 1등 1941. 함남 회령에서 태평레코드사 주최 레코드예술상에서 1등 서울 본선 대회에서 1등, 태평레코드 전속가수 입사, <오동동 극단>·<망향초 사랑> 취입 1945. 이종호(공무원)와 결혼 1946. 백난아양재학원 개원(충무로 3가) 1951. 부산 남포동에서 뉴파레스다방 경영 1954. 마지막 취입곡 <봄바람 낭랑>·<호수가 엘레지> 발표 1956. 부케악극단 조직, 가수생활 15주년 기념 지방 순회공연(향후 15년간) 1985. 수도예술학원 개원(충무로) 1992. 1. 21. 타계(대장암) 대표곡 : <찔레꽃>·<갈매기 쌍쌍>·<아리랑 낭랑>·<낭랑 18세>·<금박댕기> 외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우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 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 삼 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 /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어 습니다 /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가 부른 이 노래는 1941년 5월에 세상에 나왔으나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레코드 위에 먼지만 쌓여 갔다. 음반이 너무 팔리지 안자 레코드 점에서조차 앞쪽에서 구석으로 밀려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갔다. 해방이 된 후 뜻밖에<찔레꽃>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음반 판매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6.25를 거치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향수를 타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순식간에 국민 가요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 노래는 작곡가 김교성과 가수 백난아가 만주 공연 때 독립군들을 비밀리에 만나고 서울에 돌아와 독립군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기 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찔레꽃’이며‘세 동무’‘달뜨는 저녁’등 고향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 독립군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전쟁터에서도 틈만 나면 고향이 있는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을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랫말에서 나타난‘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등을 보며 연변 정서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이 노래가 본격적인 인기를 타게 된 것은 60~70년대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였다. 당시 농촌의 살림이 피폐해지면서 도시로 향한 이농행렬이 줄을 이었다. 무작정 도시로 왔지만 올라오는 그 날부터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산 설고 물 설은 곳에 내던진 것이다. 다리 밑이던 처마 밑이던 간에 밤이슬만 피하는 곳이면 잠을 잤다. 낮에는 도시의 골목골목을 헤매매 쓰레기통을 뒤져 깡통을 주어 팔았다. 건설현장에 막노동도 쉽게 할 수 없었다. 일 할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적다 보니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해야 했다. 수십 키로 짜리 질 통을 메고 번개 같이 고층을 오르내렸다. 조금 이라도 요령을 피우면 당장 쫓겨났다. 공사판 감독의 눈은 왜 그리도 매서운지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슴이 철렁거리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연방 내질러 대는 고함소리가 저승사자목소리보다 더 무서웠다. 성질 급한 감독은 동작이 느리다며 삽 자루고 벽돌이고 간에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발길질은 예사였다. 엉덩이는 발길질에 차이고 손으로는 콘크리트를 비볐다. 이처럼 일단 건설공사장에 들어가면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자신이 농사 짓을 때 소보다 못했다. 시골에서의 소는 살림 밑천이자 논밭을 갈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꾼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소중히 다뤘다. 수시로 여물을 먹이고 쉬어 가면서 논을 갈았다. 조금 과장된 표현인지 모르지만 당시 농가에서는 소가 죽으면 자식 하나 죽는 것 보다 더 가슴아파 했다. 당장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년에 꼭꼭 새끼를 낳아 자식 결혼 비용은 물론 학비까지 목돈을 일거에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판에 당시 한 집에 보통 자식이 5~6명 되다보니 천덕꾸러기 신세는 당연했다. 이처럼 어떠한 수모와 곤욕을 당해도 일만 시켜 주면 그만 이었다. 옷은 땀에 젖어 몸에 칭칭 감겨 걸음이 느렸다. 감독의 거친 입은 쌍소리를 연거푸 토해 낸다. 윗도리는 벗어 던지고 팬티만 걸치고 질 통을 멨다. 팬티가 찢어져 벗은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기가 흉측스러웠지만 그것 저것 챙길 여유도 없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었지만 옷을 갈아입겠다고 나섰다가는 당장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 그 따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매일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여자들은 황당 서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지나다녔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하루 하루의 고달픈 삶은 자연히 고향 그늘이 드리워지며 남쪽 하늘이 쳐다보인다. 달동네 골방 창문으로 한가로이 가는 달은 고향의 달과 똑 같다. 배는 고팠지만 그때가 그리워 자꾸만 베개 사이로 눈물이 흐른다. 처음 도시에 내던져 질 때 비유하면 타향생활에 많이 익숙해 졌다. 돈도 조금 벌어서 여유가 생기니 잠시 잊고 살았던 고향이 미치도록 그리워진다. 고향을 떠나와 향수에 젖은 이들에게 고향의 정서가 톡톡 튀는 <찔레꽃 >은 만병통치약이었다. 해가 지고 나면 도시의 선술집 골목마다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로 이어지는 하루살이 인생들의 노래 소리가 여기저기서 저 가락 장단을 타고 천리 길을 넘나든다. 대포 한잔에 거나하게 취한 이들은 어릴 적 꼴 망태 울러 메고 보리밭 사이로 오고가며 풀을 뜯던 친구들, 버들피리 꺾어 불며 온 들판을 누비며 철없던 시절, 다 어디로 가고 나 혼자 여기에 섰는가? 그 시절이 그리워 밤새껏 목청을 돋워 핏대를 세운다. 산골의 긴긴 봄날은 학생들에게도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20리 산길은 어찌 그리도 멀었든지, 어깨에 울러 맨 책 보따리가 무거워서 열두 번을 논두렁에 퍼질고 앉자 쉬었다가 걸었다. 배가 너무 고파 개울둑을 샅샅이 뒤져 찔레 순을 꺾어 껍질을 쭉쭉 벗겨 먹고 나면 한결 걷기가 수월했다. 찔레순은 떫은맛이 받쳤지만 달착지근한 것이 하굣길에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간식이었다. 이처럼 향수병 치료제였던 <찔레꽃>은 분단이후 가사의 일부가 바뀌어 졌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동무라는 이미지 때문인 듯 하다. ‘못 있을 동무야’가 ‘못 있을 친구야’로 ‘노래하던 세 동무’가 ‘노래하던 동창생’으로 손질되었다. 또 ‘삼년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도 ‘작년 봄에 모여 앉아 박은 사진’으로‘돌아 도는 북간도’ 가 ‘날아드는 내 고향’등으로 일부 수정되어 불려 졌다. 서울에서 살다가 5년 전에 마산으로 이사를 왔다는 김신길(56)씨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집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매일 풀 뜯고 나무하는 것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지게를 바쳐놓고 산자락에서 해가 지도록 낮잠을 잤다. 눈을 뜨니 날이 어두워져 풀을 벨 수가 없었다. 집에 가면 노발대발할 큰아버지가 눈에 선했다. 죽도록 일해봤자 배부르게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못 먹는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김씨는 그 길로 지게를 통통 부셔 던져 버리고 큰 돈 못 벌면 다시는 집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밤길을 걸어 서울행 완행 열차를 탔다. 막상 서울에 내려보니 갈 곳이 없어 너무나 막막했다. 양복점 견습공에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자동차조수에서부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데로 했다. 밤낮으로 일만 하다보니 돈도 어느 정도 모았다. 17년 만에 지게대신 자가용을 가지고 큰집에 가니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백발이 성성하고 너무 늙어버려 가슴이 아팠다. 사촌 동생들은 장성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어릴 적 찔레를 꺾어 먹었던 꼬불꼬불한 논두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바둑판 같이 변해 버렸다. 꼴 망태 울러 메고 풀을 뜯던 그 언덕도 보이지 않았다. 보릿대를 뽑아 피리를 불려 해도 들판에는 보리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어릴 적 같이 놀던 동무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다. 매일 동구밖에 앉자 세월을 보내던 앞집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지게와 쟁기대신 경운기가 앞마당을 지키고있었다. 훌쩍 흘러버린 세월이지만 찔레꽃의 향기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는 것이다.
곡명 아티스트 앨범 듣기 뮤비 가사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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