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향 프로필
본명 : 최영필
출생 : 1929년 평안남도 평양 ~2018년 5월 10일 (별세)
데뷔: 1946년 전국 가수 선발 경연대회 우승
수상: 2012년 제3회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0년 제1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2010년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경력 : 1946 서울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 1946 상공부 섬유국 영문 타이피스트 1946 울 중앙방송국 전속가수 1기 1946 상공부 섬유국 영문 타이피스트
1946년이면 미군정시절, 당시 상공부 영문타이피스트였다면 나름 시대를
앞선 여성 중의 한 명이었던 우리 나이 열아홉 살의 최영필. 그녀는,
주변의 권유로 일제시대 때부터 유명한 작곡가였던 박시춘이 설립한
럭키레코드사 주최의 전국 가수선발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다.
(금사향 본인의 진술로는 본인이 1등, 울고 넘는 박달재의 박재홍이 3위를
금사향(琴絲響)이라는 예명은 작사가 고려성(본명은 조경환, 그 외 필명으로 ‘
고려성은 1949년 서울레코드에서 금사향이 취입한 <호들기의 꿈>(김교성 작곡)
박시춘은 그녀의 음성을 전혀 불순물이 느껴지지 않는 '증류수'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금사향은 150 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단신이지만 부지런하며 적극적이고 명랑한 기질의
또다른 별명은 피부가 곱고 희어서'양파(다마네기)'였다.
소유자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생쥐'이라는 노래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호들기는 버들피리를 뜻하는‘호드기’의 방언. 고복수의 <타향살이> 2절에 ‘호드기를
꺾어 불던 그때도 옛날~’에도 나오는 단어로 우리 고향 사투리로는 ‘횟대기’라고 한다.
남이사 조껍대기로 횟대기를 불거나 요강으로 땡깔을 불거나 무슨 상관이야~~~)
백명’, ‘주인욱’등이 있음)이 ‘거문고 현의 울림’이라는 뜻으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거문고로 연주하는 교향악’이라는 해석도 있다)했다고 하는데,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씨의 기록에는 박재홍 1위 금사향 2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