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랑, 초로(初老)의 가객이 전하는 꿈과 인생,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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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 작성일09-08-27 19:12 조회258,7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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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어머님 용서하세요\'로 늦깎이 데뷔한 가수 이치랑이 두번째 앨범을 가요팬들 앞에 내놓았다.
발표 당시, 그저 늦깎이 가수의 소원성취 이벤트 정도로만 여겨졌던 그의 노래는 빠른 세미트로트 일색의 성인가요계에서 오히려 소리없는 주목을 받았다.
피끓는 애절함이 서린 사모곡 \'어머님 용서하세요\'는 수많은 중장년층 가요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불과 1년여 만에 가수 이치랑은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으로 각종 TV무대에 60여 회나 오르면서 가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가수이기에 앞서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무려 20여 사회 단체의 임원, 그리고 각급 학교 및 단체에서 인생과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미 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인생의 찬란한 황금기를 맞은 그에겐 가수의 무대는 새로운 도전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키우다 좌절을 맛보았던 그에게 있어 가수란 긴 평생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의 방점이었다.
실버 세대의 자화상
가수 이치랑의 일생은 험난한 현대사를 억척스레 살아온 우리네 실버 세대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후 경남 함양군에서 자란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다.
6.25 동란 직후, 냉수에 된장 한 수저 풀어 마시며 끼니를 때워야 했던 극도의 빈곤 속에서 그는 학업은 고사하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방직공장이며, 건설현장, 철공소, 양계장, 국화빵 장사 등 닥치는 데로 수 십 가지의 일을 해야만 했단다.
21살 무렵 홀홀단신 서울로 상경한 그는, 험난한 서울 땅에서 숱한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며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달려갔다.
한때는 당수도와 복싱을 익혀 정의의 사나이로 장안을 누비고
건달들과 어울리며 포드 승용차를 끌고 떵떵대며 살던 때도 있었다.
한때 건축업에 투자했다 망하면서 수천만원의 빚을 지기도 하고, 새벽같이 산지에서 과일을 떼다 시장에 내다팔며 오뚝이처럼 재기하면서…
그렇게 그는 사업가로 일신의 성공을 이루었다.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닌 한을 풀고자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까지 넘어가 공부를 마쳤다.
그렇게 억척스레 살아오며 익힌 리더십과 철학으로 그는 라이온스 협회 등 20여 개 유력 사회단체의 임원을 역임하고, 각급학교와 단체의 강사로 활약하면서 그의 인생은 그렇게 와인처럼 무르익어갔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안고 달려온 실버세대의 자화상 이치랑의 인생은 그의 노래 \'사나이 가는 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나이 험한 행로 한탄비탄 많았지만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오늘 터전 이루었네...\"
-2집 수록곡 \'사나이 가는 길\' 中 (이치랑 작사 / 박건 작곡)-
48년만의 컴백
노래는 가난한 소년 이치랑에게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였다.
천부적으로 끼가 많았던 그는 14살 때인 1959년 대구방송국(KBS HLKG) 콩쿨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일약 전속가수로 발탁되지만, 홀어머님의 결사반대로 아까운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틈틈이 무명가수로 행사무대에 올랐던 그에게 기회가 다시 온 것은 2005년.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효(孝)축제에서 「용두산 엘레지」로 대상을 거머쥐면서였다.
꿈을 접었다 여겨질 때 다시 찾아온 기회- 작곡가 남백송, 가수 손인호 등의 권유를 받은 그는 2007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40여 년의 기다림 끝에 다시 가수의 꿈을 이루게 된다.
\"...엄동설한 치마폭에 감싸주신 어머니 무엇으로 갚으리까 그때 그 정성...\"
-1집 수록곡 \'어머님 용서하세요\' 中 (이치랑 작사 / 남백송 작곡)-
수 십 년간 홀몸으로 갖은 고생하며 자식을 키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직접 노랫말로 옮긴 「어머님 용서하세요」는 예상을 뒤엎고 방송 무대를 통해 수많은 중년 가요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좀더 대중적인 작품을 원하는 팬들의 성원 속에 그는 2009년 6월 두번째 앨범 「부끄럽지 않소」로 다시 돌아왔다. 다름아닌 절친한 친구이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마로니에)」의 주인공 가수 박건의 작품이다.
\"...저 산 보기가 부끄럽지 않소
천년만년을 흔들림없이 그렇게 서있는데
백년도 못되는 사랑을 하면서 토라지고 헤어지고
산보다 높은 미움을 쌓고 강보다 깊은 상처를 받고...\"
-2집 수록곡 \'부끄럽지 않소\' 中
(이치랑,박건작사 / 박건 작곡)-
욕심많은 위정자들을 향한 뼈있는 메시지이며 생의 정점에서 이제는 인생을 관조하는 가수 이치랑의 삶의 철학이 담긴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 절로 숙연함을 선사하고 있다.
더불어, 젊은 가수에게선 결코 접할 수 없는, 투박하고 깊은 호소력의 목소리와 고전 트로트만의 짙푸른 애상은 현 시대 가요팬들에게 접하기 힘든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또 다른 수록곡 「머드 축제야」역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충남 보령의 대표 축제인 머드축제 - 그 젊음과 열정을 유쾌한 행진곡풍 멜로디에 담아낸 이 노래는 현재 보령시를 대표하는 보령시가로 당선이 유력시되는 곡이고, 조만간 보령 조각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질 예정이기도 하다.
현재 친동생이자 가수인 이민서 역시 자신의 노래 \'대천아가씨/돌아오세요\'로 호평을 받고 있어, 곧 남매가 함께 보령시의 홍보대사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머드칠로 몸을 가린 매력넘친 젊음아 진창에서 헤엄치며 깊어진 인연은
국경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로맨스는 똑같아 젊음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2집 수록곡 \'머드 축제야\' 中 (박석준,손유선 작사/박건 작곡)-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나이
적지않은 나이에 이룬 가수의 꿈은 분명 그에게 또 다른 청춘을 선사하였다.
10집까지 예고한 가수활동과 더불어 그는 내년부터 아예 자신의 기획사(리치 기획)을 직접 경영하며 다채로운 무대활동을 마련하겠노라 포부를 밝혔다.
형편이 어려운 원로가수들을 위해 전용 버스를 마련, 전국을 돌며 자선공연을 여는 계획에서부터, 실력은 있지만 음반 한장 내기 힘든 무명가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무대, 그리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효문화를 살리기 위한 공연에 이르기까지...쉼없이 쏟아져나오는 그의 열정은 20대 청춘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한편, 50대 이상이면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가수 이치랑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곧 KBS 인간극장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예비된 가수 이치랑의 기나긴 여정은 아마도 지금보다 더욱 찬란하고 값진 결실을 맺게 되지 않을까...?
\"...한 10집 정도는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목소리가 유지되는 순간까지 가수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제 노래와 도움의 손길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제가 해야 할 보다 더 값진 일이 있는 지금이 아마도 제 삶의 가장 찬란한 시기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부자냐고 물어보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바로 나, 가수 이치랑이다\' 라고 말이죠...(웃음)\"
- 2009년 8월 21일 추가 -
가수 이치랑의 1집 타이틀곡이자 애절의 사모곡(思母曲) ‘어머님 용서하세요’가 오는 8월 24일 KBS 가요무대를 통해 공중파TV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추억의 애창곡을 중심으로 꾸며지는 가요무대에서 신인급 가수의 신곡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 그간 방송 및 각종 무대를 통해 ‘어머님 용서하세요’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은 중장년층 가요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 있었기에 거둘 수 있었던 쾌거이다.
사라져가는 효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앞장서는 가수 이치랑의 집념과 열정이 마침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가수 이치랑 프로필
성명 : 이치랑
출생 : 1944년 4월 21일 경남 함양
학력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2년 수료
영국 옥스퍼드 템플턴 칼레지 수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수학
사회경력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총동창회 사무총장
경희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한국 청소년 선도위원회 위원 (종로지구)
반공연맹 안보위원 (성북지구)
사회정화위원회 위원 (서대문지구)
한국승공협의회 위원
한국교열기자협회 편집위원
영천이씨 대종회 상임고문
함양군 재경향우회 자문위원
국제 라이온스협회 (서울) 354-C지구 부총재
세계태권도 연맹 자문위원장
한국연예협회 창작분과 위원회 위원
국제 라이온스 한국 354-C지구 봉사대상 (금장) 8회 수상
국제 라이온스 한국 354-C지구 봉사대상 (은장) 3회 수상
USA 코헨대학교 홍보대사
(주)은성공예 대표이사 /대정프라자 상가회장
가수 프로필
1959년 KBS HLKG 전국 콩쿠르 특별상 수상하며 가요계 데뷔 (당시 14세)
2군 사령부 관할부대 위문공연 다수 출연
2005년5월24일 용인시 주최 ‘효의날’ 축제 대상 획득 (수상곡 : 용두산 엘레지)
2006년 9월 8일 46년 만에 연애활동 재개
2007년 9월 28일 1집 「어머님 용서하세요」발표
2009년 6월 10일 2집 「부끄럽지 않소」발표
한국연예협회 회원 / 대한가수협회 회원
백년설(나그네 설움 발표) 기념사업회 고문
손인호(해운대 엘레지 발표) 후원회 회장
2009년 8월 24일 KBS 가요무대 (가창곡 : 어머님 용서하세요) 출연을 비롯,
현재 TV출연 63회, 라디오 출연 18회 등 방송활동 중
발표 당시, 그저 늦깎이 가수의 소원성취 이벤트 정도로만 여겨졌던 그의 노래는 빠른 세미트로트 일색의 성인가요계에서 오히려 소리없는 주목을 받았다.
피끓는 애절함이 서린 사모곡 \'어머님 용서하세요\'는 수많은 중장년층 가요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했다. 불과 1년여 만에 가수 이치랑은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으로 각종 TV무대에 60여 회나 오르면서 가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가수이기에 앞서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무려 20여 사회 단체의 임원, 그리고 각급 학교 및 단체에서 인생과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미 이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인생의 찬란한 황금기를 맞은 그에겐 가수의 무대는 새로운 도전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키우다 좌절을 맛보았던 그에게 있어 가수란 긴 평생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의 방점이었다.
실버 세대의 자화상
가수 이치랑의 일생은 험난한 현대사를 억척스레 살아온 우리네 실버 세대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후 경남 함양군에서 자란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다.
6.25 동란 직후, 냉수에 된장 한 수저 풀어 마시며 끼니를 때워야 했던 극도의 빈곤 속에서 그는 학업은 고사하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방직공장이며, 건설현장, 철공소, 양계장, 국화빵 장사 등 닥치는 데로 수 십 가지의 일을 해야만 했단다.
21살 무렵 홀홀단신 서울로 상경한 그는, 험난한 서울 땅에서 숱한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며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달려갔다.
한때는 당수도와 복싱을 익혀 정의의 사나이로 장안을 누비고
건달들과 어울리며 포드 승용차를 끌고 떵떵대며 살던 때도 있었다.
한때 건축업에 투자했다 망하면서 수천만원의 빚을 지기도 하고, 새벽같이 산지에서 과일을 떼다 시장에 내다팔며 오뚝이처럼 재기하면서…
그렇게 그는 사업가로 일신의 성공을 이루었다.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닌 한을 풀고자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까지 넘어가 공부를 마쳤다.
그렇게 억척스레 살아오며 익힌 리더십과 철학으로 그는 라이온스 협회 등 20여 개 유력 사회단체의 임원을 역임하고, 각급학교와 단체의 강사로 활약하면서 그의 인생은 그렇게 와인처럼 무르익어갔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안고 달려온 실버세대의 자화상 이치랑의 인생은 그의 노래 \'사나이 가는 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나이 험한 행로 한탄비탄 많았지만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오늘 터전 이루었네...\"
-2집 수록곡 \'사나이 가는 길\' 中 (이치랑 작사 / 박건 작곡)-
48년만의 컴백
노래는 가난한 소년 이치랑에게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였다.
천부적으로 끼가 많았던 그는 14살 때인 1959년 대구방송국(KBS HLKG) 콩쿨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일약 전속가수로 발탁되지만, 홀어머님의 결사반대로 아까운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후 틈틈이 무명가수로 행사무대에 올랐던 그에게 기회가 다시 온 것은 2005년.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효(孝)축제에서 「용두산 엘레지」로 대상을 거머쥐면서였다.
꿈을 접었다 여겨질 때 다시 찾아온 기회- 작곡가 남백송, 가수 손인호 등의 권유를 받은 그는 2007년 1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40여 년의 기다림 끝에 다시 가수의 꿈을 이루게 된다.
\"...엄동설한 치마폭에 감싸주신 어머니 무엇으로 갚으리까 그때 그 정성...\"
-1집 수록곡 \'어머님 용서하세요\' 中 (이치랑 작사 / 남백송 작곡)-
수 십 년간 홀몸으로 갖은 고생하며 자식을 키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를 직접 노랫말로 옮긴 「어머님 용서하세요」는 예상을 뒤엎고 방송 무대를 통해 수많은 중년 가요팬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좀더 대중적인 작품을 원하는 팬들의 성원 속에 그는 2009년 6월 두번째 앨범 「부끄럽지 않소」로 다시 돌아왔다. 다름아닌 절친한 친구이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마로니에)」의 주인공 가수 박건의 작품이다.
\"...저 산 보기가 부끄럽지 않소
천년만년을 흔들림없이 그렇게 서있는데
백년도 못되는 사랑을 하면서 토라지고 헤어지고
산보다 높은 미움을 쌓고 강보다 깊은 상처를 받고...\"
-2집 수록곡 \'부끄럽지 않소\' 中
(이치랑,박건작사 / 박건 작곡)-
욕심많은 위정자들을 향한 뼈있는 메시지이며 생의 정점에서 이제는 인생을 관조하는 가수 이치랑의 삶의 철학이 담긴 노래는 듣는 이들에게 절로 숙연함을 선사하고 있다.
더불어, 젊은 가수에게선 결코 접할 수 없는, 투박하고 깊은 호소력의 목소리와 고전 트로트만의 짙푸른 애상은 현 시대 가요팬들에게 접하기 힘든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또 다른 수록곡 「머드 축제야」역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충남 보령의 대표 축제인 머드축제 - 그 젊음과 열정을 유쾌한 행진곡풍 멜로디에 담아낸 이 노래는 현재 보령시를 대표하는 보령시가로 당선이 유력시되는 곡이고, 조만간 보령 조각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질 예정이기도 하다.
현재 친동생이자 가수인 이민서 역시 자신의 노래 \'대천아가씨/돌아오세요\'로 호평을 받고 있어, 곧 남매가 함께 보령시의 홍보대사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머드칠로 몸을 가린 매력넘친 젊음아 진창에서 헤엄치며 깊어진 인연은
국경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로맨스는 똑같아 젊음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2집 수록곡 \'머드 축제야\' 中 (박석준,손유선 작사/박건 작곡)-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나이
적지않은 나이에 이룬 가수의 꿈은 분명 그에게 또 다른 청춘을 선사하였다.
10집까지 예고한 가수활동과 더불어 그는 내년부터 아예 자신의 기획사(리치 기획)을 직접 경영하며 다채로운 무대활동을 마련하겠노라 포부를 밝혔다.
형편이 어려운 원로가수들을 위해 전용 버스를 마련, 전국을 돌며 자선공연을 여는 계획에서부터, 실력은 있지만 음반 한장 내기 힘든 무명가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무대, 그리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효문화를 살리기 위한 공연에 이르기까지...쉼없이 쏟아져나오는 그의 열정은 20대 청춘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한편, 50대 이상이면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가수 이치랑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곧 KBS 인간극장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예비된 가수 이치랑의 기나긴 여정은 아마도 지금보다 더욱 찬란하고 값진 결실을 맺게 되지 않을까...?
\"...한 10집 정도는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목소리가 유지되는 순간까지 가수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제 노래와 도움의 손길에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제가 해야 할 보다 더 값진 일이 있는 지금이 아마도 제 삶의 가장 찬란한 시기가 아닐까요?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부자냐고 물어보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바로 나, 가수 이치랑이다\' 라고 말이죠...(웃음)\"
- 2009년 8월 21일 추가 -
가수 이치랑의 1집 타이틀곡이자 애절의 사모곡(思母曲) ‘어머님 용서하세요’가 오는 8월 24일 KBS 가요무대를 통해 공중파TV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추억의 애창곡을 중심으로 꾸며지는 가요무대에서 신인급 가수의 신곡이 무대에 오르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 그간 방송 및 각종 무대를 통해 ‘어머님 용서하세요’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은 중장년층 가요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이 있었기에 거둘 수 있었던 쾌거이다.
사라져가는 효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앞장서는 가수 이치랑의 집념과 열정이 마침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가수 이치랑 프로필
성명 : 이치랑
출생 : 1944년 4월 21일 경남 함양
학력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2년 수료
영국 옥스퍼드 템플턴 칼레지 수학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수학
사회경력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총동창회 사무총장
경희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한국 청소년 선도위원회 위원 (종로지구)
반공연맹 안보위원 (성북지구)
사회정화위원회 위원 (서대문지구)
한국승공협의회 위원
한국교열기자협회 편집위원
영천이씨 대종회 상임고문
함양군 재경향우회 자문위원
국제 라이온스협회 (서울) 354-C지구 부총재
세계태권도 연맹 자문위원장
한국연예협회 창작분과 위원회 위원
국제 라이온스 한국 354-C지구 봉사대상 (금장) 8회 수상
국제 라이온스 한국 354-C지구 봉사대상 (은장) 3회 수상
USA 코헨대학교 홍보대사
(주)은성공예 대표이사 /대정프라자 상가회장
가수 프로필
1959년 KBS HLKG 전국 콩쿠르 특별상 수상하며 가요계 데뷔 (당시 14세)
2군 사령부 관할부대 위문공연 다수 출연
2005년5월24일 용인시 주최 ‘효의날’ 축제 대상 획득 (수상곡 : 용두산 엘레지)
2006년 9월 8일 46년 만에 연애활동 재개
2007년 9월 28일 1집 「어머님 용서하세요」발표
2009년 6월 10일 2집 「부끄럽지 않소」발표
한국연예협회 회원 / 대한가수협회 회원
백년설(나그네 설움 발표) 기념사업회 고문
손인호(해운대 엘레지 발표) 후원회 회장
2009년 8월 24일 KBS 가요무대 (가창곡 : 어머님 용서하세요) 출연을 비롯,
현재 TV출연 63회, 라디오 출연 18회 등 방송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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