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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싱어-송라이터 장형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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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케이아이
작성일25-10-30 10:13 조회2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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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싱어-송라이터 장형식 선생

자작곡 노래방그대 떠났어도등 발표

86세에 문화-교육사업가에서 가수로 변신

1113일 청담동 리베라호텔 3층 연회장서

자신의 작품 노래한 가수들과 작품발표회

국내 최고령 싱어-송라이터라는 신기록을 세운 가수가 나타났다. 최근 그대 떠났어도’(장형식 작사·서지산 작곡)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한 장형식 선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25년 봄 그대 떠났어도와 함께 노래방’(장형식 작사·작곡)사랑은 신기루’(장형식 작사·이태강 작곡)를 발표한 장 선생은 1939년생으로 금년 86세이니 최고령에 자작곡으로 데뷔한 신인가수라는 신기록도 함께 세웠다.

 

종전기록은 유성호 선생이 74세 때인 지난 2015년 자작곡 인생은 백세시대를 발표하며 신인가수로 데뷔했을 때 수립됐다. 유성호 선생은 83세 때인 지난 2024년 자작곡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며 최고령 싱어-송라이터로 불렸다.

 

장형식 선생은 한자실력급수시험을 주관해온 사단법인 한자교육진흥회와 사단법인 고전문화연구회, 재단법인 간송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주인공이다.

 

수년전부터 법인들의 실질운영을 후손들에게 맡겨왔다는 장 선생은 10여 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가사도 써보자며 노랫말을 직접 만들기 시작해 여러 편의 가사가 완성됐다.

 

노래방의 가사를 처음 쓴 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부르겠다면서 멜로디를 붙여달라고 몇몇 작곡가에게 맡겼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작곡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그대 떠났어도를 만든 작곡가 서지산은 나중에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자신이 직접 노래하며 발표한 가사들뿐만 아니라 이준이의 세월은 가도’(문정기 작곡), 정준영의 내 고향 진주’(차석진 작곡) 등 동료 가수들에게 20여 편의 가사를 제공해 이미 발표했거나 녹음을 준비 중이다.

 

시와 가사를 쓰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령에 가수로 나선 것은 무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장 선생은 재단들의 운영을 후손들에게 맡기고 여유가 생겼을 때 제주도 남원읍에 별장을 구입해 노래방기기(엘프808)를 설치해놓고 지인들과 함께 노래하며 즐기곤 했다. 서울에 머물 때는 종로3가와 종로5가 사이에 있는 노래교실 서너 군데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새로 유행하기 시작한 노래교실은 교실만한 실내에 무대를 만들어놓고 1만원의 입장료에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신형 노래방이다. 다른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부르는 노래를 좌석에 앉아 노래교실이 제공한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먹고 마시며 감상까지 하는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감상하면서 자신의 노래실력과 비교하고 사람들의 반응까지 알 수 있어서 노래 솜씨가 늘 수밖에 없다고 한다. 거기에 관객 앞에서 노래하니 무대경험까지 쌓을 수 있다.

 

장형식 선생은 전남 보성에서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17대 효종대왕 비인 인선왕후 장씨가 고모할머니였다고 한다. 인선왕후의 부친이었던 신풍부원군 계곡 장유는 조선의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하니 그 문재를 이어받아 늦게라도 좋은 노랫말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학 졸업 후 보통고시(지금의 행정고시 전신)에 합격해 중앙 행정부처에서 근무했다. 새마을운동의 시초부터 참여해 새마을사업계획 전국 1위를 차지, 중앙정보학교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발돼 고위정책교육을 이수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새마을운동 방향을 새마음가꾸기 운동으로 선행해 정신개혁운동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인구과밀이란 이유로 실시한 산아제한 운동에 관해서도 약소민족을 면하기 위해서는 재외국민까지 최소 인구 1억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세계사의 교훈임을 강조했다. 산아제한 정책보다 보다 넓은 나라로 국민을 보내는 이민정책 등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상부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본인의 이상과 상치되는 직장을 3년여 만에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대학교육에 종사하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1년여 연수에 참가했다. 연수를 하며 선진국의 미래사회 발전방향은 문화 사업이 중요시 될 것으로 예감했다.

 

귀국 후 고전문화, 인성교육, 한자 한문교육을 위한 자료개발과 연구를 해 조기명퇴를 한 후 상경해 ()고전문화연구회, ()한자교육진흥회, 어문능력평생교육원과 온라인평생교육원, ()간송학술장학재단, 도서출판 형민사 등 6개의 법인 및 회사를 순차적으로 설립해 운영했다. 평생교육과 사회교육에 헌신하다가 81세가 되던 해에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작사가와 가수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장형식 선생은 오는 1113일 정오부터 오후4시까지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3층 연회장에서 장형식 작품발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자신의 가사로 만든 노래를 부른 가수 10, 노래방에서 사귄 가수 10, 실용음악과를 나온 외손자(박도현)와 손자며느리(김경민) 등이 무대에 오른다.

노래를 하다보면 사람을 미워할 새가 없어 좋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즐거워지니 좋아서 가수로 나서게 되었다라고 장 선생은 구수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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